짐 안와서 적는 혼란했던 경험들.

2021.03.14 00:33:37 2021.03.14 14
#1 069Cp38H
잠 안와서 폰으로 끼적끼적 내가 경험했던 걸 올리고 싶네. 누구 있든없든 심심해서 ㅠㅠ
#2 069Cp38H 2021.03.14
초등학교 저학년, 왕따에다 부모님한테 관심도 크게 못 받았던 시절이 있었어. 혼자만의 세계에서 상상 친구들이랑 노는게 전부였지. 그나마 초2때 피아노를 취미로 배우는게 즐거운 정도..? 선생이 집에 와서 30분 정도 레슨 하고 가고 그랬어.
#3 069Cp38H 2021.03.14
피아노는 안방에 있었고, 분명 햇볓이 잘 드는 남향의 방이었는데, 이상하게 어린 나이임에도 나는 그 방이 무섭고 싫었어. 어른들이랑 같이 있을때는 안 그런데, 피아노 연습하러 혼자 들어가면 뒤에서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
#4 069Cp38H 2021.03.14
한 번은 그런 상황이 약이 올라서 무서운걸 꾹 참고 건반에만 집중하면서 체르니를 연습하고 있었어.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애 다운 오기였던 것 같아. 등이 시려운걸 참고 체르니를 치기 시작했지. 총 10번 반복해서 연습하는 숙제였거든. 10번 채우고 방에서 나가면 내가 이기는 거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치기 시작했어.
#5 Ts9Y8jIN 2021.03.14
호우 ㅠㅠ
#6 069Cp38H 2021.03.14
첫 번째 완독을 하고 공책에 스티커 하나를 붙였는데, 등이 시려운 정도는 똑같았어. 다만.. 이상하게도 다른 때랑 다르게 내 등 뒤? 그러니까 창문에 누가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 뿐이었지. 볼 생각도 안 났고, 피아노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억지로 다시 건반에 손을 올리고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
#7 069Cp38H 2021.03.14
두 번째. 연습을 완료했는데 기쁘지 않았어. 손에서 땀이 너무 축축하게 흘러서 치다가 끊고 바지에 손을 자주 닦아야 했거든. 그리고 끊는 중간중간 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거 같은거야.
#8 069Cp38H 2021.03.14
이상하지... 엄마는 지금 부엌에 있고, 문만 열면 바로 달려가서 안길 수 있는데. 대낮이어서 환한데 내 자리랑, 피아노랑, 이 방만 너무 춥고 누가 있는거 같아서 꼼짝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세 번째로 연습곡을 시작했어. 이미 제정신도 아니었고 너무 무서운데, 피아노를 안 치면 뒤에 그것이 내 옆으로 다가올 거 같았거든.
#9 069Cp38H 2021.03.14
그.. 뭐라 하지? 피아노 치면서 박자를 맞추기 위해 똑딱똑딱 해 놓는 거. 그 소리 중간중간 무슨 소리가 섞여 들어오는거야. 내 손은 자동으로 체르니를 치고 있었고, 귀는 그 사이사이 들리는 소리에 완전 집중하고 있었지. 드득드득 드득드득 드득 드득 드득 드득드득 드드드득드득득 드득드득 똑딱이는 소리 중간중간.. 들렸던 소리. 막대기 같은걸로 울퉁붕퉁한 것을 긁으면 나는 소리? 무튼 모르겠어..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무섭고, 잡아먹힐거같은 공포와 두려움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난 네 번째 연습을 하고 있었지.
#10 Ts9Y8jIN 2021.03.14
메트로놈
#11 069Cp38H 2021.03.14
옆에 누가 있는가? 귀옆이 간질거리고 숨 소리가 들리는거 같아서 피아노를 치다가 순간 오른쪽 귀를 선으로 팍 쳤어. 뒤를 돌아볼 생각은 못했지만 내 등에 눈이 달려있는 것 처럼 온 정신은 등 뒤로 가 있었어. 옆에 누가 있는가? 옆에 누가 있는가? 숨 소리가 들리는가? 피아노는 이미 못 치고 있는지 오래. 방에서는 똑닥이는 소리만 들리고,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울고만 있었어.
#12 069Cp38H 2021.03.14
>>10 아 고마워! 그래 메트로놈! 드드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소리가 순간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린거야. 놀라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날 거 같은데, 그렇지 않더라. 그냥 얼어서 멈춰버리거든. 난 그냥 말 그대로 얼어버렸어. 그런 채로 얼굴만 돌리게 된 거지. 보지말자.. 보지말자.. 마음속으로는 그러고 있는데, 얼굴을 안 돌릴 수가없는거야. 얼굴을 돌리고 귀 옆에 누가 있는지 보고 그 뒤 기억이 없어. 저녁때 쯤 깨서 울면서 나왔거든. 눈코 없이 입과 이빨만 민둥한 얼굴이 내 귀 옆에서 드르륵 소리를 내고 있더라. 이빨로 드르르륵 소리 내면서.... 살아오며 이 얼굴이랑 자주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때가 처음으로 본 경험이었어. 웃긴건, 피아노 치는 동안 엄마가 부엌에서 뭔갈 씻고, 요리한다 생각했는데, 엄마는 나 피아노 체르니 첫 번째 연습부터 장 보러 갔었더라. 시끄러웠던 그 존재는 뭐였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어. 눈 떠보니 캄캄한 밤에 방에서 나 혼자 뒤로 자빠져있길래 울면서 뛰쳐나왔지. 안 움직이던 몸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재빠르게 니왔는지 모르겠어. 부모님은 애가 그냥 우나보다 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고. 이후 많은 헛것들을 보기 시작했던 거 같아
#13 069Cp38H 2021.03.14
별로 임펙트 없고 재미 없지? 근데 내가 본 것들이 대체로 그러했어. 지하철 건너로 보였던 민둥한 얼굴이나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인 미친듯이 몸을 흔들어대던 인영(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 건, 발의 위치가 등쪽에 있었거든) 책상 밑에 쭈그리고 날 보던 아이 등등.. 그냥 그런 갑자기 보이다가 갑자기 사라진 것들이었거든. 오싹하지만 놀라진 않았던 거같아. 나이 먹으면서는. 근데 참... 저 피아노 에피소드 만큼은 너무 무서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
#14 069Cp38H 2021.03.14
간만에 옛날 이야길 꺼내니까 좀 그립기도 하다. 우습네 ㅎㅎㅎ 혹시 내 이야길 봐준 사람 있다면 고맙구, 언젠가 또 풀고싶은 날이 오면 와서 툭 풀어놓고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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