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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20:55:54 2021.02.28 300 / 완결
#1 VN64tMKl
양가성의 문제에 대하여, 혹은 위상학적 무규정성에 관하여
#271 K0ExzJs3 2021.02.21
>>269 만약 >>22를 보고 말한 거라면, 도덕 앞에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 앨리스. 우리는 >>163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어.
#272 ueihfgOm 2021.02.21
>>270 너가 말하는 동물의 협동 본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들은 그것을 결코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우선시하지 않아. 그러나 인간은 협동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협동할 수 있고, 협동하면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신념, 사상 등에 의해 그것을 거부하기도 하지. 동물도 약한 개체에게 자신의 먹이를 양보하는 등의 1차원적인 협동이야 할 수 있겠지만, 꼴보기 싫은 사람에게도 자리에 맞게, 지위에 맞게 예의를 갖추어 거절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는 없지. 그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된 건 인간이 앞서 말했던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 만으로는 자아실현이나, 더 높은 차원의 행복(쾌락)을 느낄 수 없게 진화했기 때문이겠지
#273 ueihfgOm 2021.02.21
>>271 그리고 이 답글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나 또한 도덕 앞에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단지 내가 전하고 싶었던 건,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엄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특정 상황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기도 해, 나는.
#274 ueihfgOm 2021.02.21
그보다 너가 쓰는 앨리스, 오랫만이야.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이 인사 좀 마음에 드는데? 멋진 것 같아
#275 ueihfgOm 2021.02.21
이제 읽어보니 >>272 이 글은 문단 구분을 안 해서 가독성이 좀 떨어지네 ㅋㅋ 미안해 종종 흥미로운 대화를 이어가 보자
#276 GbWizeyF 2021.02.24
>>272 네 말을 정리해보자. “동물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협동 본능을 우선하지 않는다. 동물들이 보여주는 ‘협동 본능’이란 단순한 것이며, 형식적인 절차나 표현 등 고도화되어 있지 않다. 반면 인간은 신념이나 사싱에 따라(이를 협동 본능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욕구를 포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이성적이다. 이는 인간이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만으로는 고도화된 행복(쾌락)을 얻을 수 없고, 욕구의 충족과 함께 협동이 동반될 때만 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77 GbWizeyF 2021.02.24
>>272를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1. 동물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협동을 우선하지 않는다. 2. 동물들의 협동과 달리 인간의 협동은 형식화되어 있다. 3.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형식화된 협동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4. 인간은 협동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포기할 수 있다. 5. (2), (3), (4)를 동물과 다른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이라고 한다.
#278 GbWizeyF 2021.02.24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해. (1) 네가 인정한 것처럼, 동물들은 협력적인 행동을 해. 윌킨스의 연구는 흡혈박쥐가 “자신과 친밀한 관계인” 다른 흡혈박쥐에게 자신이 얻은 피의 일부를 양보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러한 복잡한 연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룩말이나 코끼리가 자신이 속한 무리를 공격하는 적에 협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심지어 얼룩말 무리의 경우, 포식자를 경계하는 소수의 보초가 있어. 이 보초들은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큰 위험에 노출되는데. 이 보초 얼룩말들은 생존 본능이 없어서 이러는 걸까?
#279 GbWizeyF 2021.02.24
(2) 동물들도 형식화된 방식으로 “예의”를 표현할 수 있어. 드 발 교수가 보고한 것처럼, 네덜란드 동물원에서 권력 싸움에 밀려난 침팬지는 젊은 권력자 침팬지에게 복종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였어. 그리고 이러한 권력다툼 역시 “위협하고 허세부리는 상징적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하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오히려 원시인들이 더 고도화된 의식행위에 집착했어. 그렇다면 그러한 "형식성"은 의외로 “동물적”인 게 아닐까?
#280 GbWizeyF 2021.02.24
(3) 아이젠버거 같은 학자들은 인간이 사회적 고통(즉, 심리적 고통)과 물리적 고통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느끼고,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드왈 교수가 심리적 고통에 진통제가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를 하기도 했고.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이라는 말은 상당히 애매한 말이지만, 만약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의미라면, “형식화된 협동”과 같은 것도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일지도 몰라.
#281 GbWizeyF 2021.02.24
(4). (3)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사회적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면, 협동을 위해서 다른 욕구를 포기하는 것은 사실 어떤 욕구를 위해서 다른 욕구를 포기하는 거야. 물론, 이건 이성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욕구의 선택을 항상 이성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아. 예를 들어,“배고프고 졸린 데, 밥을 먹을까? 잠을 잘까?”하는 선택은 이성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나는 지금 더 배고프다(혹은 졸리다).”라는 판단의 결과일 뿐이니까. 심지어 범죄 역시 욕구에 따른 행위인데, 그렇다면 그것도 이성적인 거야?
#282 GbWizeyF 2021.02.24
(5) 결론짓자면, 협동이나 형식화된 “도덕적 행위”라는 게 사실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도덕이 왜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야. 도덕은 사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닐지도 몰라.
#283 GbWizeyF 2021.02.24
>>273 그렇다면 왜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정을 옹호해야 하는거야? "남성이 여성에 비해 일반적인 영역에서 더 우월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반대하기 시작한 게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어(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백인이 흑인에 비해", "일반인이 범죄자에 비해",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 비해"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어떤 주장들'에 대해 도덕적인 이유에서 반대했던 사람들은 다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던 걸까?
#284 GbWizeyF 2021.02.24
>>274 어쨌든, 앨리스. 나는 네가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주려고 한 것 같아서 기뻐. 고마워. 하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렇지? "너"는 내 말을 이해하겠지만, 너는 아닐테니까. 이 글은 독백이니까. 언제든 찾아와 줘. 물론 이 타래가 끝나면 이런 글은 더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너무 우울하거든.
#285 GbWizeyF 2021.02.24
인간의 번식 욕구는 사실 죽음에 대한 거부이고 불멸에 대한 희구다. 과학이나 철학, 문학과 같은 예술은 이러한 거부와 희구 속에서 탄생했다. 수식 속에서, 사상 속에서, 시 한 줄과 음악 선율 속에서 불멸을 향한 욕망과 죽음의 공포가 비친다. 그렇다면 인간이 불멸하는 시대에 이것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286 Pf@NBQG7 2021.02.25
와...내가 대충 써 본 글에 이렇게 시간을 들여 답장을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 어디 나도 한번 다시 담론을 이어가 볼까?
#287 Pf@NBQG7 2021.02.25
>>278 이 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너가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네. 동물도 본능보다 협력을 우선시 할 수 있다는 것 말야. 그렇다고 그게 인간이 이성적으로 하는 즉,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에 관한 협력 혹은 거부와 동물의 보초(왜냐하면 보초 시스템도 결국 더 큰 무리의 생존을 위해서니까.) 시스템이 같을 수 있는 이유는 아닌 것 같아.
#288 Pf@NBQG7 2021.02.25
>>279 이 글에 대해서 난 이렇게 생각해 원시인이나 동물들이 일정한 행동들에 대해서 현대의 인간보다 그 형식에 더 집착하는 것은, 아니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현대 인간들은 형식이란 걸 어마어마하게 많은 카테고리로 나눠서 사용하기 때문에 잘 특정 지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말야. 예를 들어 침팬지들이 무리에서 힘을 겨룰 땐 위협하는 방식밖에 사용할 수 없지. 그 이외에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까. 그러나 예를 들어 인간은 상대가 나보다 지위가 높으면, 면전에선 숙이고 뒤에서 이상한 소문을 흘리던가 해서 상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지. 내가 말한 상대의 지위와 자리에 맞게 예의를 갖춘다는 건, 인간은 동물보다 더 다양하게 협동이든 거부든 다양한 행동들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물론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말이지. 이것은 오히려 원시인이나 동물들보다 철저하게 형식화 되어 있지만, 세세하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즉 인간은 특정 경우마다 다른 행동들을 보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그렇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고 생각해.
#289 Pf@NBQG7 2021.02.25
>>288 즉 인간은 동물들처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전해 내려와 유전자에 새겨진 방식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거야. 침팬지가 자기보다 센 다른 침팬지에게 독버섯을 먹여서 독살하거나 하지는 않잖아? 힘으로는 못 이기지만 결국 힘겨루기를 하겠지.
#290 Pf@NBQG7 2021.02.25
>>280 이건 전제가 살짝 잘못된 것 같은데, 인간은 형식적인 행동으로 행복을 느낀다기 보다는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이성적인 사고를 많이 한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어.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이 놓여져 있어도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 그 음식을 먹지 않을 수도 있겠지? 꺠달음을 얻기 위해 힘든 고행길을 일부러 떠나기도 하잖아? 그런 것 처럼 인간은 고차원적인 행복이 필요하고 그걸 추구한다는 거였어 신체적인 쾌락 뿐만이 아니라. 물론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같을 순 있겠지만, 그리고 그 쾌락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고차원적인 행동들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신체적 욕구로 간주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1차적인 신체적 욕구를 제쳐두고 고차원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판단 자체가 이성적으로 본능을 억누른 행동이라고 생각해
#291 Pf@NBQG7 2021.02.25
>>281 "졸리고 배고픈데 잠을 잘까 밥을 먹을까" 이 질문 안에 있는 2개의 욕구는 모두 신체적 욕구지. 수면욕과 식욕. 이 둘중에 어떤 것을 고른다고 해서 그것이 본능을 넘어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할 순 없지. 당연해. 더 편해지는 길을 찾을 뿐이니까. 그러나 무고한데 죄를 뒤집어쓰고 쫒기는 사람을 집에 숨겨줬는데, 배가 고파 돈이 필요한 지금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을지, 아니면 이 무고한 사람을 보호해 줄지를 고민한다면, 이것은 신체적 욕구(식욕)과 무고한 사람을 지킨다는 도덕적 행동(신념) 사이에서 고민, 갈등하는 상황이지. 여기서는 무슨 판단을 하던지 이성적인 판단이겠지. 아니, 이 2개의 선택지에서 고민을 1초라도 하는 순간 이미 이성적으로 고민한 거라고 난 생각해.
#292 Pf@NBQG7 2021.02.25
>>282 내 생각이지만, 도덕적 행위는 생물학적인 이득에서 나오는 게 맞아. 그러나, 버스에서 힘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정도의 행위는 크게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무리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는 행동도 아니지. 기껏 해봐야 양보한 사람은 자기 만족 덕분에 하루를 편하게 보내는 정도? 그러나 우리 인간이 1차적인 욕구를 제쳐두고, 그런 도덕적 행위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이성적인 부분이라는 거지. 무리의 목숨이 걸려 있을 때 보초를 서는 얼룩말이더라도,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손해를 감수하는, 혹은 그렇지 않은) 도덕적 판단과 그것을 행하는 고차원 적인 방식을 따라올 순 없다는 거지.
#293 Pf@NBQG7 2021.02.25
>>283 이건 생리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따라 다를 것 같아. 일반적으로 남자의 근력이 여자보다 우월한 건 생리학적으로 규명된 사실이야. 그러나 인종, 성적인 자아 등 '생리적인 차이를 가지고 생리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까지 우월하다고 하는 건' '일반적으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거의 맞아 떨어지는 조건'에서 벗어나는 언동이지. 인간은 모두 달라. 그리고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나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겠지. 범죄자 같은 경우는 우리 인간 사회의 법규를 어겼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들의 가치는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낮다고 생각해. 그러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는 다르지만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
#294 Pf@NBQG7 2021.02.25
>>284 우울하다니...그건 슬픈 소식이네. 이런 얘기를 한다고 우울함이 풀리지 않는다면 굳이 이런 대화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이런 대화들, 나는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거든. 이런 글들을 쓰면서 우울함이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더 좋은 분출법을 찾아보는 게 어때? 하지만 너도 이미 많은 걸 시도해 봤을 거 같네. 그런 사람에게 이런 말은 똑같은 말이겠지? 난 우울할 때가 오면 그냥 언젠간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곤 해.
#295 NSvdp3XG 2021.02.27
>>287은 "동물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협동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한 나의 설명(>>278)에 대해 반박하고 있지 않다구, 앨리스. 너의 설명은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에 따른 협력 혹은 거부와 동물의 행동은 다르다. 왜냐하면 동물의 행동은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에 따른 협력 혹은 거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순환논증이야. 최초에 내 설명(>>278)이 네 말을 정리한 명제 중 어떤 것을 설명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라. 오히려 적절한 지적은 이렇게 제기됐어야 해. "'인간도 협력적인 행동을 한다. 동물도 협력적인 행동을 한다. 따라서 인간과 동물은 같다.'는 논증은 잘못됐다." 이러한 지적이 나왔다면, 나는 다시 물었을거야. "그렇다면 두 협력적 행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앨리스, 너의 대답인 "신념이나 사상"이 제시될 수 있지. 그리고 그러한 대답을 하고자 한다면, 너는 "그것(신념과 사상)이 왜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해.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인간의 협동 역시 신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생물학적 본능(즉, 사회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생물학적 반응)에 따른 것"이라고 답한거고. 이제는 더이상 말할 기회가 없겠지만, 한 번 생각해보길 바라.
#296 NSvdp3XG 2021.02.27
>>289 앨리스, 네가 말하는 간접적 방식의 "복수"도 유인원들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현상이야. 도덕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이 왜 침팬지들을 살펴보는지 생각해봐. 그리고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는 몰라도, 인간들이 보이는 "이성적인 방식의 힘겨루기"도 유인원들과 동일하게 유전자 수준에서 발생한다는 설명이 드 발 교수의 연구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라는 게 내 생각이야. 다시 말해서, 네 말처럼, 침팬지도 다른 침팬지를 무작정 죽이는 게 아니야. 유인원들도 일견 "이성적"으로 보이는 힘겨루기를 한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297 NSvdp3XG 2021.02.28
>>290부터 >>292에 관해서는 내 설명이 부족해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탓인 것 같아 다시 설명할게. 내 설명은 "도덕적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도덕적 행위가 목표로 하는 "사회성"에 대한 거야. 도덕은 사회성을 전제로 성립하는거니까.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사회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라는 거야. 그런데 최근의 연구는 심지어 이러한 사회성, 즉, "사회적 욕구"가 "고통에 대한 회피"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와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해. 사회에 속하지 못하면(왕따를 당하거나, 실연을 겪거나 등) 인간은 배가 고파 죽는 것과 같은, 또는 신체적으로 공격받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거야.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성, 더 나아가 사회성에서 "형식화", "조직화" 된 어떠한 "도덕"은 "배고픔"이나 "졸림"과 같은 육체적인 욕구와 어떻게 구분되냐는 것이 내 의문의 핵심이야. 즉, "도덕적인 행동을 할까, 아니면 육체적 쾌락을 즐길까?"하는 질문이 단지 동어반복적인 질문이 아니냐는거야. 도덕이 일회적인 기쁨만 주고,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사회성이 도덕의 근본이라니까? 인간은 자신의 본성적인 기쁨 얻고자 사회를 위해 존재하고 죽는 생물이 아니야? 그게 보초가 되어 위협당하는 얼룩말과 뭐가 다른거야?
#298 NSvdp3XG 2021.02.28
이제 곧 이 타래도 끝날테니, 이 타래에 대해 말해볼까? 나는 우울해. 하지만 >>294의 말처럼 어떤 분출을 위해서 이 글을 쓴 게 아니었어.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재미있었거든. 왜 우울함을 분출하거나 해결해야 하는데? 다만, 이런 글을 쓰면서 우울함이 늘어난다면 그걸 원치 않을 뿐이야. 우울하면서 재미있을 수 있냐고? 당연히 있지. 감정이라는 건 원래 복합적인 거야. 네가 말하는 그 순간의 감정만 네 말에 갇혔을 뿐이고. <날개>에서의 이상의 말을 생각해봐. 감정은 하나의 "포우즈"야. 정지한 상태에서만 말해지는 것. 그러니 감정을 적절하게 말한다는 것, 심지어 어떤 "생각"을 적절하게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우리는 각자 죽어갈 뿐이야. 앨리스라는 이름도 그런거였어. 대화라는 것이 성공하길 바라는, 폭력적인 시도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말장난과 독백 뿐이야.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땅 속이 아닌 이상한 나라의 존재에게 적절한 이름이자 독백을 듣는 나 자신의 분열된 존재가 "너", 앨리스였어.
#299 NSvdp3XG 2021.02.28
그래서 이 글은 여러가지 시도를 했어. "나는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색감으로나마, 또는 말장난으로, 또는 현학적 개소리로 너희에게 말하고자 시도했던 것들.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새겨주길 바랐던 뭔가를 전달하고자 시도했던 게 이 타래야. blur라는 이름도 그래서 지은 거였어. 규정되지 않는 것. 정확히는 규정될 수 없는 것. 양가성과 무규정성. 그래도 실패했지만, 그리고 또 실패하겠지만, 나는 계속 하겠어. 원래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고 하잖아? 이런 말도 안되는 시도라도 계속 하다보면, 그 심연을 메우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어떤 헛소리도, 독백도, 계속 하다보면 진정한 의미의 "말"이 되지 않겠어?
#300 Xhutr896 2021.02.28
어...안녕!!! 또 볼 수 있었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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